Moon, Sujin

문서진의 작업에 대하여 

                                                                                                                                                                        이성휘 



조각을 하는 것을 몸을 쓰는 일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조각의 범위와 몸을 쓰는 일의 범위나 그 종류 등, 조각과 몸 쓰는 일 사이에서 예상되는 불일치를 우선 생각하며 동의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작가 문서진은 자신이 기본적으로 조각을 한다고 말하며, 주로 몸을 쓰는 일로 작업을 구성해 왔다. 자신의 작업을 배우고 경험해나가는 것으로 규정하기도 하는 문서진은 호기심이나 궁금함에서 작업을 시작하되 결과보다는 도달하는 과정에서의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작업을 일종의 여정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극기에 가까운 1인 퍼포먼스부터 시간이 흐르면 자연의 일부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을 위해 부단히 애쓰는 일, 또 과거는 현재의 나를 어떻게 구성했는가에 대한 생각에서 출발한 작업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업은 늘 몸의 수행, 그리고 몸의 여러 감각들 중에서도 특히 촉감과 관련 되어 왔다. 그러나 문서진은 자신의 작업이 명백한 노동으로 보여지는 것을 경계하며 작업이 작가 개인에게 어떻게 다가왔는지를 중시한다. 특히 무념무상의 상태에 가까울 정도로 신체적인 일에 집중할 때조차도 감각적으로는 깨어 있는 느낌을 중시한다. 이 글에서는 현재까지 그의 작업에서 보이는 특징을 몇 가지 키워드를 통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수행과 집중 
문서진은 일찍이 <내가 그린 가장 큰 원>(2016)과 같은 작업에서 자신이 설정한 행위에 집중하여 신체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작업에서 문서진은 “컴퍼스의 원리와 같이, 바닥 위의 한 점에 엄지발가락 끝을 고정하고, 최대한 몸을 길게 뻗어 손이 닿는 가장 먼 지점의 둘레를 그렸다.” 작가는 “원을 그리는 동안은 바닥에 밀착된 몸의 위치로 인해 자신이 그리고 있는 원의 전체를 바라볼 수 없고, 원을 볼 수 없다는 점은 원을 그리는 그 순간순간의 동작에 집중하게 해준다”고 말한다. 그리고 “몸의 길이와 더불어 최대한으로 몸을 뻗는 동작만이 정확한 원을 그리기 위해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척도”라고 밝힌다.1) 마침내 작가의 몸이 바닥을 한 바퀴 돌아 시작한 위치로 도착하는 순간, 우리는 작가의 집중력에 의해 전혀 찌그러지지 않은 완벽한 원이 완성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는 다른 작업에서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이는 작가의 윤리적 태도로도 받아들여지는데, “내 작업에서 다 떼도 남는 것은 태도가 될 것”이라고 한 작가의 말은 이를 뒷받침 한다.2) 


텍스트 
현대미술에서 작업의 결과물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새로울 일이 아니고 결과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경우 대신 작가들은 여러 가지 형식으로 작업을 기록하거나 전시한다. 문서진의 작업은 <살아있는 섬>(2020), <비우기: 몸으로>(2018)와 같이 특정 장소에서 퍼포먼스 형태로 진행한 작업일 경우 결과물이 자연으로 돌아가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작가는 이 작업들을 영상 기록의 형태로 우리에게 전달하는데, 우선 <비우기: 몸으로>는 텍스트가 양각된 커다란 원통을 바닷가 모래사장과 눈 쌓인 공원에서 굴리는 작업이었다. 통의 생김새로 봐서는 와인 배럴을 굴리는 놀이를 연상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신체와 맞먹는 크기의 통을 작가가 천천히 굴리면서 지면에 써내려가는 글귀가 ‘비우려는 마음마저도 비우고 지우려는 마음마저도 잊으려는 생각마저도 잊고 버리려는 마음마저도 버리고’라고 읽히는데, 이 엄숙한 내용으로 말미암아 통 굴리기는 일종의 의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이 작품의 영문 제목을 ‘Breaking Words: through body’라고 명명함으로써 비우기의 의미를 말을 끊어내는 것으로 빗댄다. 그리고 영상 말미에서 작가가 몸을 사용하여 써내려간 글은 밀물에 의해 다 지워져 버리고, 눈이 녹아버림으로써 더이상 남아 있지 않게 된 사실을 보여준다. 자연에 의해 지워진 글은 작가 개인에게는 기억, 상념, 욕심과 같은 것이 될 수 있겠고, 우리 인간이 자연과 역사에 남기고자 하는 사상, 문명 등 인위적인 모든 것이기도 하다. 사실 텍스트는 문서진의 여러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요소다. 특히 텍스트가 얹히는 매체 즉 종이나 책, 또는 그 중간 과정에 존재하는 인쇄 활자판 등에 관심을 갖고 직접 제작하곤 한다. 텍스트는 작업의 내용을 일부 전달하기도 하고, 타인과 작가를 연결하는 매개이기도 한데, 문서진은 텍스트가 기록되어지는 과정에 자신의 수고스러움을 감수한다. 이 수고에는 텍스트가 결국 놓칠 수 밖에 없는, 텍스트로 완전하게 전할 수 없는 수많은 기억과 감각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깔려 있다.  그의 작업들은 텍스트를 중시하지만 동시에 텍스트의 불완전성을 인정한다. 예컨대 <발화>(2019)에서 작가는 입모양에 따라 빛이 발하여 모르스 부호처럼 빛으로 쓰여지는 언어를 보여준다. 여기서 작가는 텍스트에 메시지를 담기보다 포착하려는 순간 사라지고마는 불완전한 대상으로 제시한다. 신작 <맨질맨질하고 딱딱한 삶에 대한>(2021)에서는 할머니가 남긴 수첩의 손글씨를 모사하거나, 할머니의 글씨체를 활자화 시켜서 또 다른 글을 생산하기도 하였다. 이는 자신을 존재하게 하고 현재의 자신을 구성케 한 과거를 바라보는 작가의 방법이기도 하며, 또 가장 수고스러운 방법으로 자신의 현재를 있게 해준 고마운 존재들에 대한 기억과 감각을 환기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작업 초반 작가는 한지를 직접 생산할 계획을 세운 적도 있는데 이를 아직 실행하지는 않았지만, 범일운수종점에서 참여한 전시 《걸레색》(2021)에서는 할머니의 글씨체로 활자를 만들어 할머니에 대한 기억과 대화를 이 활자들로 써내려 갔다. 일부는 목판 위에 좌우 반전으로 새겼고, 일부는 얇은 트레이싱지에 형압으로 새겼다. 그리고 낡은 서랍을 해체하여 나온 목판과 트레이싱지를 경첩을 이용하여 서로 연결함으로써 전체 설치는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책의 구조를 연상시키게 구성하였다. 


촉각 
문서진이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다룬 작업 <맨질맨질하고 딱딱한 삶에 대한>은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잠시 제목이 <이정자 할머니의 전화번호부>였던 적이 있다. 그러나 범일운수종점의 전시를 앞두고 작가가 결정한 제목은 사물에 닿는 손끝의 촉각을 상기시키는 제목으로 바뀌었다. 작가의 작업실에서 할머니가 사용하던 낡은 나무 빨래판과 반짇고리함을 본 적이 있는 필자는 이 바뀐 제목이 인상 깊었다. 작가는 3D 스캐너를 사용해 빨래판의 복제본을 만들기도 하였는데, 낡고 닳고 휜 나무 빨래판의 복제본은 빨래판에 수만 번 닿았을 할머니의 손, 작가 자신에게도 수없이 닿았던 그 손의 촉감을 환기한다. 작가는 자신을 길러준 할머니를 촉감이나 냄새 등 신체적인 감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할머니가 일상적으로 사용한 물건, 그리고 해마다 반복적으로 일가친적의 전화번호부를 업데이트하여 사용한 수첩의 글씨들에서 그 신체적 감각을 일깨운다. 그가 후각과 촉각을 통하여 기억을 환기하는데 집중한 작업은 <엄마의 엄마의>(2019)라는 작업에서였다. 작가가 외국에 있는 동안 작가의 모친은 한국에서 옷가지들을 부쳐주었고, 이 옷들 속에는 할머니의 옷도 섞여 있었다. 작가는 천조각 일 를 휴대하고 다니면서 한국의 사람들이 그리워질 때마다 냄새를 맡고는 하였다는데, 이후 이 옷가지들에서 섬유를 추출해 종이를 만들었고, 작가 본인, 어머니, 할머니, 이렇게 3대의 기억과 이야기를 형압 인쇄하여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세 장의 긴 종이를 겹쳐서 앞뒤로 접은 후 아코디언 북 형식으로 접은 이 책은 보통의 책처럼 한 방향으로 넘기면서 읽을 수도 있지만, 3대의 겹쳐진 서사를 번갈아가며 읽기 위해서는 겹쳐진 종이의 표면과 모서리, 그리고 오돌도돌하게 새겨진 글씨들을 끊임 없이 손으로 어루만지게 된다. 세 사람이 들려주는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에는 같은 장소와 인물, 비슷한 삶의 패턴이 등장하지만, 겹쳐진 아코디언 북 형식의 종이장을 들춰 읽는 것만큼이나 서로 얽혀 있다. 작가가 한 권의 책 속에서 공존시킨 세 사람의 대화는 같은 장소, 같은 인물, 그리고 같은 사건에 대한 각각의 입장이 등장하기도 하면서 서로는 얽혀 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피부 질감을 닮은 책장 표면을 접촉하게 됨으로써 개인(작가를 포함하여 책 속의 화자들)이 기억하는 감각은 또 다른 개인(작가, 책을 읽는 관람객)의 기억과 감각을 자극하게 된다. 


문서진의 작업은 이렇게 촉각을 통하여 서로 연결되곤 하는데, 작업 과정을 영상뿐만 아니라 책 형태로도 기록한 <살아 있는 섬>(2020) 역시 책장을 넘기는 손의 감각이 작업의 일부가 된다. 수백 장의 사진을 인쇄하여 이어붙인 이 책에 대해서 작가는 “호수 위에서 삽질을 하는 나는 정지된 채로 종이 뭉치 사이에서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린다. 종이를 넘기는 소박한 손길이지만, 그가 종이를 넘겨주는 순간에야 비로소 나는 움직여질 수 있다”고 하였다.3) 그는 미국 몬슨에서 체류하는 40여 일 동안 호수 위에 쌓인 눈을 모아서 산처럼 쌓아 올렸는데 점점 날씨가 풀리면서 호수의 얼음이 녹고 쌓아올린 눈더미는 호수 위 섬처럼 되었다. 추운 날씨에 극한 노동이 동원된 작업이었지만 작가는 자신의 노동을 강조하기보다는 작업 과정에 깃들어 있는 기억이나 감각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는 <살아 있는 섬>에 대해서 “기록물은 본래 일어났던 퍼포먼스에 대한 재현이기보다는 작업의 단상과 기억에 대한 해석물이 되기를 바랐다”고 말한다.4) 우리의 시감각은 재현에 압도되기 십상이나, 두께와 무게를 지닌 육중한 책을 넘기는 손의 감각은 시감각을 온몸의 감각으로, 그리고 비물질적인 존재나 타인에 대한 감각으로 전환시킨다. 그래서 작가는 호수 위에서 그날그날 시시각각 온몸으로 느낀 감각, 기억뿐만 아니라 그 기간 동안 그를 돌봐주거나 염려해준 주위 사람들에게 고마워하며 이들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는다. 

애당초 조각은 손의 감각, 촉각의 예술이지만, 오늘날 우리는 작품 보존 등의 이유로 만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그러므로 조각을 눈으로 읽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문서진은 자신의 책 작업을 감상자가 만지는 것을 전제로 하여 제작해왔지만 많은 이의 손을 탄다면 보존에 염려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촉각을 통해 감각과 기억을 환기하는 것이 현재 그의 작업이 지닌 본질이기에 타인의 손길이 닿아 생기는 변형은 부차적인 문제인 것 같다. 모든 것이 한시적이라는 점을 작가는 <비우기: 몸으로>나 <살아 있는 섬>과 같이 결과적으로는 자연으로 사라지고 마는 작업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내 작업에서 다 떼도 남는 것은 태도가 될 것”이라고 한 작가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1) 문서진의 작업 노트에서 발췌(http://www.moonsujin.com/the-biggest-circle-that-i-draw). 

2) 필자와의 대화(2021.10)

3) 문서진의 포트폴리오(2021) 참조. 

4) 문서진의 포트폴리오(202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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