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섬 (Living Island)



한달 가량 진행한 퍼포먼스, 2020


미국 메인주의 작은 마을 Monson에 위치한 호수 Lake Hebron에서 한달 가량 진행했던 퍼포먼스 <살아있는 섬>은 2020년 2월부터 3월까지 얼어붙은 호수 위에 삽과 썰매로 눈을 쌓아 올려 봄이 되는 사라지는 섬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발 딛고 서 있는 지면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잠재된 죽음에 대한 두려움, 자연에 대한 경외, 연약하고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과 누군가의 응원으로부터 받는 위안에 대한 여러 단상들이 작업에 얽혀있다.


A month-durational performance,  2020


‘Living Island’, a month-long performance project, creates a snow island on the frozen lake with the simple act of shoveling snow until the spring starts the island melt. The work is intertwined with the ideas of the fear from the situation of standing and working on the unstable earth, on the ice, the alertness of latent death, the vulnerability of being, and the consolation from the connection and solidarity with people.

 

기록물 / documentation


단채널 영상, 12분 50초, 2020


사운드: 전영준 

Single Channel video, 12 min. 50 sec. 2020


Sound: Jeon Yeong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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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엔 한 동료 작가가 내게 물었다. 봄이 되어 내가 만든 이 섬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냐고.  잘 모르겠다. 이 섬의 마지막을 보고 싶은 것인지 아닌지. 이 섬은 또한 필멸의 존재이다. 그리고 봄이 되면 죽을 것이다. 알 수 없는 그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섬을 나는 보고 싶은걸까, 보고 싶지 않은 걸까. 그것을 본다면 내 마음은 어떨까, 보지않는다면 그것은 또 어떤 마음일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죽음이라는 미지는 미지인 채로 남겨두고 싶다. 나는 아직 더 살아야 하니까.

                                                                                                                                                  - 작업 일지 : 열한번째 날 中

 

섬이 엊그제 즈음부터 계속 녹고 있다. 오늘 가보니 섬은 절반에 가까운 정도로 작아져 있었다. 주변에 쌓여있던 눈들도 그 높이가 확연히 줄어든 게 눈에 보인다. 스노우 라이더들의 눈에 띄라고 표시해놓은 나뭇가지들이 조금 더 모습을 드러냈고, 삽질을 하니 호수 바닥이 오랜만에 언뜻언뜻 얼굴을 드러낸다. 눈에 띄게 작아진 섬을 보니 내가 하는 일의 실체를 좀 더 여실히 느낀다. 이것은 쓸모 없는 일이다. 이 섬이 어떻게 사라지게 될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날씨가 본격적으로 따듯해지기 시작하면 이 섬은 며칠 사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게 위안이 된다.

- 작업일지 : 열 여섯번째 날 中



 


한동안은 계속 기온이 올라갈 것 같다. 며칠만 더 일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지만 이 섬은 이 겨울 동안만 살아있는 한철살이 이니까, 그걸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비가 온다는 소식도 있던데, 비가 오면 다시 섬이 작아질까. 다시 섬이 작아지면 마음 편히 눈을 더 쌓을 수 있을까, 아니면 작아진 섬을 이제 이 섬의 한철살이를 끝낼 시기라고 받아들여야 할까. 

내일은 더 따듯해진다. 아주 조금만, 며칠만 더 이 호수에서의 시간이 주어졌으면 좋겠다.

                                                                                                                                                                                                                                                                                                                                                            - 작업일지: 스무번째 날 中

 

호수 표면은 하루 사이 엄청 녹아서 거대한 슬러시가 되었다. 푸딩 위를 걸어 다니는 것처럼 발이 한도 끝도 없이 푹푹 빠진다. 섬에 다다르니 섬 주변에는 물웅덩이가 생겨 해자처럼 섬으로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섬이 죽어간다. 죽어가는 섬의 몸에서 투명하고 맑은 물이 나온다. 섬은 더 이상의 심폐소생을 거부한다. 이 호수처럼 조용하게 마지막을 맞고 싶은 것 같다. 더 이상 삽질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닌 듯하고 이 섬도 그걸 바라지 않는 것 같다. 

그저 사진 몇 장과 영상 몇 개를 찍고 돌아왔다. 이제 이 일의 마지막이 보인다. 그래도 삼일 정도는 더 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 호수의 환경은 언제나 내가 감당할 수 잇는 수준의 훨씬 더 높은 차원에 있다. 이렇게 성큼 다가온 봄을, 이 섬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다.

 - 작업 일지: 스물 두번째 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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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날 (2020.2.10)
맑음, 바람 없음 - 6 ~ -12도 


오전에 일을 하는 도중 호수 바닥에서 둥둥 하며 울리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한번은 크랙이 가는 소리도 들렸다. 어제보다 기온이 올라가서 얼음 상태가 더 약해진걸까. 그 동안에도 이 소리가 계속 들렸는데 바람 소리에 묻혀있던 걸까. 호수는조용한 가운데 바닥에서 둥둥 하는 간헐적인 소리가 들린다. 공포에 휩싸인 내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가끔은 진동도 느껴지는 것 같다. 심장이 잔뜩 쫄아 붙는다. 작은 소리에도, 층층이 생겨난 눈 조각들이 발 밑에서 조금만 흔들려도 화들짝놀란다. 호수 주변 숲에서는 누군가가 사냥을 하는지 간혹 가다 화약이 터지는 
총소리가 들리는데 그 소리에도 마음이 철렁한다. 얼음이 깨져 호수에 빠지는상상을 한다. 만일 정말로 내가 쌓은 섬이 이 얼어붙은 호수 표면을 무너뜨릴정도로 무거워진다면, 그리고 그 위의 나는 내가 쌓아온 눈과 함께 차가운 호수 밑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면, 그런 장면을 상상하는 가운데 일단 삽질은 한다. 


지금 이 얼어붙은 호수 표면 밑에서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정말 이 호수가 무너진다면, 그 순간이 언제일지, 몇 일인지, 몇 시 몇 분 몇 초일지 나는 모른다. 그리고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내 발 밑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그래서 얼마나 눈을 쌓아야 이 호수가무너지는지를, 내가 정확히 알고 있다면 나는 이 일을 더 진행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혹은 안심하고 더 큰 섬을 쌓기를 욕심 낼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내 발 밑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르기 때문에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일 수도 있다.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기도, 할 수 없기도 하다.
무거운 눈 더미와 함께 차가운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면 살아 나올 수 있을까?작업을 하다가 죽는 건 상상해보지 않은 일인데, 아직 젊은 나이에 이렇게 죽을수는 없는데, 별별 생각을 다 하면서 삽질을 한다. 그러나 나는 내가 며칠 몇 시 몇분 몇 초에 죽게 될지 도무지 모른다. 그 누구도 모른다. 죽는 그 순간마저도 내가 죽는다는 것을 알 수나 있을까? .

모르기 때문에 하는 쪽을 선택할 수도,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할 수도 있다.
미지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고 있을 수만은 없다.
모르기 때문에 나는 하는 쪽을 선택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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